[Book Review] 야생의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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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고객, 김경필 저, 김영사, 2015.02.


글. 구자룡 밸류바인 대표컨설턴트(경영학박사)

마케팅의 시작은 고객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객을 관찰하고 서베이를 통해 특성을 파악하게 된다. 이렇게 파악된 고객프로파일을 바탕으로 신상품을 개발하고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장을 장악해 간다. 이것이 마케팅의 일반적인 시나리오이다. 그런데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일까? 이유는 진짜 고객을, 고객의 속마음을, 고객이 원하는 것을, 그리고 고객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경영자가, 마케터가 모르기 때문이다. 일반화된 고객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야생의 고객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고객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설정된 고객이다. 이제 누군가가 설정한 인위적인 장막을 걷어내고  <야생의 고객>이란 책을 통해 야생의 고객을 만나보자.

우리의 고객은 진정 누구인가?

방수는 되지만 불편한 착용감, 볼품없는 디자인의 장화를 누가 신고 싶을까?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거나 공사장에서, 그리고 비오는 날 초등생들이 학교 갈 때나 신는 장화를 직장인 여성들에게 과연 필요할까? 장화의 기능성으로 보면 그다지 필요한 제품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비를 막아주는 신발이 아니라 비 오는 날에도 패션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준” ‘헌터(Hunter)’ 장화는 젊은 직장 여성들이 꼭 장만해야 하는 필수 제품이 되었다.

비가 올 때는 참으로 유용하지만 비만 그치면 참으로 난감한 제품이 장화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제품을 갈망하는 고객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떤 생각들이 있을까? 이 고객들의 마음 속 생각을 읽어내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데, 과연 누가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기업의 경영자는 고객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기업 안에서 어느 누구도 진지하게 고객이 누구인가에 대해 깊은 논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경영자가, 마케터가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 기업 내에서는 이런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단순하다. 이미 우리의 고객들에 대한 정확한(?) 프로파일을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서베이 조사결과와 다양한 마케팅 기술로 충분히 무장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터가, 경영자가 여기에 안주하는 동안 고객의 생각을 읽어낸 기업은 저 만치 앞서가게 된다. 경쟁사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경쟁사를 볼 것이 아니라 진정 누가 고객인지 찾아나서야 한다.

어떻게 고객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을까?

자기관리와 일정관리를 위한 필수품으로 한 때 ‘프랭클린 플래너’가 직장인들에게 각광을 받은 적이 있다. 계획성 있는 업무처리를 위해서는 꼭 습관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길 정도였다. 그런데 이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대신 검정색 표지에 아무런 표시도 없는 ‘몰스킨’이라는 브랜드의 노트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노트가 제시하는 길을 가기보다 자기 스스로 가야 할 길을 노트에 적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프랭클린 플래너보다 어떤 특별한 기능도 제공하지 않는 몰스킨이 판매되는 이유이다.”

제품 자체의 품질과 기능도 중요하지만 그 제품을 구매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문제는 품질과 기능은 바로 알 수 있는 요소인 반면에 진짜 이유는 바로 알기 어려운 고객의 인식 속에 있는 요소라는 것이다. 몰스킨을 사는 이유는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마음대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이고, 헌터는 비오는 날에도 패셔너블하고 싶은 여성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아이폰은 성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가볍게 가지고 놀고 싶을 때 항상 주머니 속에서 꺼낼 수 있는 장난감 되고,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는 야생마와 같이 남성의 마초적인 성향을 표출할 수 있는 무언의 도구가 된다.

이렇게 좋은 상품을 고객은 왜 구매하지 않을까?

많은 경영자와 마케터는 이와 같은 질문을 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하다. 고객이 갖고 싶은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공급자 마인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고객이 진짜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는 사실이다. 고객이 갖고 싶어 열망하는 그런 제품을 만든다면 팔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제부터는 고객을 이성과 이기심으로 재단하는 표준 마케터의 시각이 아니라 고객을 인간 본성으로 이해하는 야생 마케터의 시각으로 고객을 본다.”는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은 인간에게 분석하고 판단 할 이성이라는 도구를 주었지만 인간은 마지막 선택을 할 때는 상상력을 활용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만약 사람들이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만 한다면 우리의 경제시스템이 지금같이 복잡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영과 마케팅이 어렵다는 생각은 바로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고객을 가정하고 기획한 경영과 마케팅 활동이 정작 그 현장에서는 계획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구매결정을 할 때 고객들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불규칙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마케터는, 경영자는 이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고객들이 제품을 구매할 때 어떤 생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 상상해야 한다. 의사의 흰 머리카락이 전문적 소견보다 환자에게 더 전문성과 신뢰감을 주는 것은 흰 머리카락이 있으니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 있을 것이고 의학적 전문성을 갖추었을 것으로 상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기업이 사업을 시작할 때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대다수의 기업은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에 관심이 크다.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고객만족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그 이해의 깊이가 다른 것 같다. 겉으로는 고객만족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기업만족에 더 가까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한 때 포드의 경영진은 사람 목숨을 20달러로 대입하여 사망 위로금을 지급한 적이 있다. 물론 소송으로 확대되어 막대한 위자료를 지급했다. 자동차의 안전을 확보해줄 부품 비용인 11달러를 아끼기 위해 고객의 안전에 관련된 만족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만약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그리고 깊이 고민했다면 아마도 의사결정은 달려졌을 것이다.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상황에서 잘못된 질문으로 스스로 위기를 확대 재생산했던 것이다. 비단 포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질문해 봐야 한다. 우리는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는 프랑스의 창의적인 샌드위치 매장인 ‘프렛(Pret A Manger)’의 창업동기와 이후의 성장과정에서 한마디로 초심, 즉 ‘내가 먹고 싶은 것이 고객이 먹고 싶은 것이다’라는 창업자들의 명제를 지금까지 지킴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객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제품이 시장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정보는 그야말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정보가 부족해서 시장에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오히려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실패한다. 정보가 많기 때문에 고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실패의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고객을 ‘분석된 데이터’로만 만나는 것은 마치 페이스북만으로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 기업이 고객에 대한 평균적인 정보를 잘 알고 있지만 고객이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모르는 것은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다.

한 때 교통수단의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호평을 받았던 ‘세그웨이’라는 제품이 있다. 물론 현재도 시장에 이 제품이 있기는 하지만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그 이유로 “인간으로서 고객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파악했다. 그렇다면 고객은 교통수단으로 어떤 삶을 원했을까? 개그맨 김준호씨가 <인간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모습이 바로 야생의 고객의 삶이었다. 편리했던 교통수단이 지하철에 들어가는 순간 무거운 짐짝이 된 것이다. 만약 제품 개발자가 조금만 고객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봤다면 이렇게 무거운, 그리고 안전하지 않는 교통수단을 개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그웨이의 생산 공장 CEO였던 지미 헤셀든은 바로 자신이 만든 세그웨이를 타다 절벽에서 추락하여 사망했다.

고객의 생각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그들 생활 속으로 들어가라

“고객을 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내 입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보가 아니라 직접적 대면을 통해 고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보를 투명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객에 대해 많이 아는 것과 고객을 제대로 아는 것은 전혀 다르다.”라고 하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고객을 이해하고 고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를 파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는 뭔가 새로운 방법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단언컨대 새로운 방법은 없다. 이미 많은 방법들이 나와 있다.

라파이유 교수가 주장한 ‘컬처코드’, 잘트만 교수가 만든 ‘ZMET’, 조사방법의 일종인 ‘자연주의조사법’, 그리고 P&G에서 사용하고 있는 ‘살아보기(living it)’ 등이 이미 있다. 저자 역시 고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브랜드 맵핑’ 같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조사방법이 아니라 고객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읽어낼 수 있다.

저자 김경필은 브랜드 컨설팅과 교육을 통해 이러한 방법의 중요성과 함께 실제 고객을 찾아가는 그리고 고객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전문가이다. 저자는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면서 매우 쉽게 설명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질문을 통해 고객의 생각을 읽어내는 기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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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현재 밸류바인의 대표이며,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컨설팅, 조사연구, 데이터분석 그리고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그 동안 저술한 책으로는 '지금 당장 마케팅 공부하라', '마케팅 리서치', '한국형 포지셔닝', '공공브랜드의 전략적 관리', '시장조사의 기술' 등이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마켓 센싱 및 인사이팅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제고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